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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도 57기 숲해설가 전문과정 2026.09.23

사람이 싫어서 숲으로 갔습니다 ― 잇는 숲에서 함께 존재하는 법

작성자 최예윤

안녕하세요. 숲에서 숲해설가가 된 57기 최예윤(모로)입니다.

후기라고 하기에는 조금 긴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짧고 간단한 수강 후기를 기대하셨다면 아마 꽤 긴 글이 될 테니, 인터넷에서 가끔 만나는 연재물처럼 생각하시고 짧게 끊어 읽어 주셔도 좋겠습니다.

제가 ‘숲해설가가 되어야겠다’고 처음 생각한 것은 2026년 초였습니다. 개인적으로 꽤 큰일을 겪은 뒤 사람에게 지쳐 있던 시기였습니다. 수업 전 고정 일정이었던 3분 스피치에서도, 동기 선생님들과 나눈 이야기에서도 몇 번 말했지만 당시 제 생각은 아주 단순했습니다.

‘사람이 싫으니 숲으로 가야겠다. 자연으로 가야겠다.’

그렇다고 정말 산속에 들어가 자연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도시의 편리함도 좋아하고 공산품도 좋아하고, 무엇보다 도시가 주는 안전함도 좋아합니다. 그렇다면 사람들과 계속 부딪히는 일에서는 조금 벗어나면서도 숲과 자연 가까이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궁금해졌습니다. 그렇게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숲해설가’라는 직업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시작부터 여유롭지는 않았습니다. 자리가 많지 않았던 터라 정해진 시간까지 교육비를 입금하지 않으면 다음 대기자에게 기회가 넘어간다는 연락을 받고 부랴부랴 입금했습니다. 그렇게 얼떨결에 몇 주 뒤부터 정말 숲해설가 양성과정을 듣게 되었습니다.

2026년 5월 12일, 오리엔테이션에서 처음 교재를 받아 들었을 때는 두께부터 심상치 않았습니다. 과목도 많고 공부해야 할 내용도 많아 보였습니다. ‘이거 그냥 다녀서는 안 되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첫 수업을 들었습니다. 어려웠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어려웠습니다. 얼마나 당황했는지 쉬는 시간에 휴대전화로 환불 규정을 찾아봤습니다. 그런데 확인해 보니 같은 주에 한 강의를 더 듣더라도 환불되는 비율에는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어차피 똑같다면 수업 하나만 더 들어 보고 결정하자.’

그런데 그다음 수업이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세상에 이런 걸 배우는 수업이 있구나.’

그렇게 한 번만 더 들어 보자고 했던 수업을 계속 듣다 보니 어느새 네 달이 지나 있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저는 숲해설가가 되고 싶다고 하면서도 정작 자연을 제대로 바라본 적이 거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길을 걷다가 나무가 있어도 ‘이 나무는 무슨 나무일까?’ 궁금해하지 않았습니다. 햇볕을 가려 주면 그늘이 생겨 고마웠고, 급하게 지나가야 할 길에 조경수나 가로수가 많으면 오히려 불편하다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길가에 풀이 잔뜩 자라 있으면 그저 ‘풀이 많네’ 하고 지나갔습니다.

곤충은 대부분 ‘벌레’였습니다. 풀은 그냥 풀이었고, 나무는 그냥 나무였습니다. 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특히 도시에서 흔히 만나는 비둘기는 제게 반가운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가까이 다가오기라도 하면 기겁하고 피하거나 쫓아내기 바빴습니다. 말로는 자연과 가까이 살고 싶다고 하면서 정작 자연을 이루는 생명 하나하나를 깊이 들여다본 적은 없었던 것입니다.

그 사실을 이 교육을 받으면서 처음 알았습니다. 수업을 듣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왜 자연을 좋아하지 않았을까?’

아니,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나는 왜 자연을 제대로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을까?’

였습니다.

숲과 생태계를 배우면서 제가 인간으로 살아오며 막연하게 고민했던 것들 가운데 의외로 많은 것에 자연이 이미 답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생명은 어떻게 서로 기대어 살아가는지, 경쟁하면서도 어떻게 공존하는지, 죽은 것은 어떻게 다시 다른 생명의 바탕이 되는지, 하나의 생태계 안에서 각자가 어떻게 자기 자리를 만들어 가는지를 배우다 보니 인간관계와 삶을 바라보던 제 사고방식도 조금씩 유연해졌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아쉬워졌습니다.

‘조금만 더 일찍 자연을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조금만 더 일찍 공부했더라면 내가 답답해했던 것들을 다른 방식으로 바라볼 수도 있지 않았을까.’

‘대체 나는 왜 이렇게 오랫동안 자연에 관심을 두지 않았을까.’

그런 뒤늦은 아쉬움이 수업을 들으며 여러 번 밀려왔습니다.

물론 저보다 훨씬 뒤에 숲 공부를 시작하신 분들도 계실 것이고, 공부에 늦고 빠른 시기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이번 과정에서 다양한 연령대의 선생님들과 함께 공부하면서 그 점을 더 많이 느꼈습니다. 저와 비슷한 또래도 있었지만 부모님 또래의 동기 선생님들도 계셨습니다. 같은 숲을 배우는데도 살아온 시간과 경험에 따라 받아들이는 것이 조금씩 달랐습니다.

그래서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 어린이에게도, 청년에게도, 중년에게도, 노년에게도 각자의 삶의 시기에 맞는 숲 공부가 있으면 좋겠다고. 사람이 살면서 느끼는 답답함과 막막함 가운데 일부는 초록빛 숲에서 조금은 풀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말입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제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저는 분명 ‘사람이 싫어서 숲으로 가겠다’고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숲해설가는 사람을 만나지 않는 직업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정반대였습니다.

숲해설가는 숲만 알아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자연을 관찰하고 이해하는 것만큼이나 사람을 바라보고,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상대에 맞게 설명하고, 함께 걷고, 서로 다른 사람들이 숲 안에서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도록 이끄는 일이 중요했습니다.

결국 숲해설가는 자연과 사람 사이에 서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자연이 가진 이야기를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전달하고, 평소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생명 앞에서 사람이 잠시 멈춰 설 수 있도록 연결하는 매개자였습니다.

그래서 돌이켜 보면 지난 네 달은 단순히 숲에 관한 지식을 배우는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잘 전달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숲을 재미있게 바라보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나와 다른 사람과 함께 걸을 수 있을까.’

그것을 계속 연습한 시간이었습니다.

숲에 관한 지식을 단기간에 외우고 시험을 보는 것만으로 끝나는 과정이었다면 지금과 같은 마음은 갖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아무리 많은 식물의 이름과 학명을 외운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숲을 전부 안다고 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 더구나 숲과 생태계는 사람이 몇 달 공부했다고 해서 모두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자연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는 말의 의미를 이전보다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수업은 일주일에 세 번씩 이어졌고, 실습 기간에는 며칠을 연달아 동기 선생님들과 만났습니다. 그러다 보니 웬만한 친척보다 자주 얼굴을 보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5월 12일 처음 만나 서로 이름도 모르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서로의 발표를 듣고, 시연을 봐 주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고, 간식을 나누고, 힘들 때 챙겨 주는 사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팔자에도 없다고 생각했던 57기 총무까지 맡게 되었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참 과분한 자리였습니다. 부족한 총무의 사정을 어여삐 여겨 주신 동기 선생님들이 많이 도와주셨고, 덕분에 저는 ‘총무’라는 이름을 달고 오히려 제가 더 많은 도움과 예쁨을 받으며 수료할 수 있었습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마침 교육 장소도 서울의 남쪽인 양재동이었으니 제게는 묘하게 잘 맞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번 과정을 지나오면서 좋은 사람과 좋은 곳에 함께 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즐기며, 어디에 마음을 두고 살아갈 것인지도 조금은 배운 것 같습니다.


그 가운데 특히 잊기 어려운 시간이 국립수목원 실습이었습니다.

한여름,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를 만큼 뜨거운 날씨였습니다. 일반 해설 프로그램이 취소될 정도로 더운 날도 있었지만 저희는 수목원 안을 함께 걸었습니다. 온몸이 땀으로 젖고 지칠 법도 했는데, 여러 숲해설가 선생님들의 서로 다른 해설을 듣는 시간이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국립수목원 실습을 하려고 숲해설가 과정을 듣는 사람도 있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속으로 ‘설마 그것 때문에 이 긴 과정을 듣는 사람이 정말 있을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실습을 마치고 나니 왜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지는 조금 알 것 같았습니다.

같은 나무를 보고도 해설가마다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이 달랐습니다. 누군가는 식물의 특징에서 이야기를 시작했고, 누군가는 역사로 넘어갔고, 누군가는 사람의 삶과 연결했습니다. 같은 숲을 걷는데도 누구와 걷고 어떤 이야기를 듣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숲이 되었습니다.

그 경험이 너무 좋아서 수료한 뒤에도 동기들과 다시 국립수목원을 찾기로 했습니다. 한 번 보고 끝나는 숲이 아니라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계속 만나 보고 싶다는 마음도 생겼습니다.

시연을 준비하는 과정도 기억에 남습니다. 교육과정 안에서 미리 시연을 연습하고 서로의 해설을 지켜보며 피드백을 주고받았던 시간이 있었기에 실제 평가를 준비할 때도 훨씬 수월했습니다. 혼자였다면 막막했을 일을 먼저 경험한 선배들과 동기들이 도와주었고, 그렇게 하나씩 준비하다 보니 어느새 저도 사람들 앞에서 나무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교육과정 자체도 인상 깊었습니다.

‘어디서 이런 분들을 모셔 왔을까?’ 싶을 만큼 기억에 남는 강사님과 교수님들이 계셨습니다. 물론 수많은 사람에게 수업을 듣다 보면 개인적으로 잘 맞는 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분도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전체적으로 다양한 분야의 강사진을 구성하고, 교육생들이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과정을 끝까지 완수할 수 있도록 이론과 실습, 발표와 시연을 연결해 놓은 교육과정은 잘 짜여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식물과 나무만 배운 것도 아니었습니다. 곤충, 조류, 양서류와 파충류를 비롯한 여러 생물과 생태에 관한 수업이 있었고, 자연을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할 것인지에 관한 수업도 있었습니다. 실제 표본을 눈앞에서 보여 주시며 설명하시는 분도 계셨고, ‘앞으로 평생 이 수업에서 배운 기술을 직접 쓸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반드시 알아 두어야 했던 응급처치와 안전 관련 교육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강사님들의 눈이었습니다. 자신이 오랫동안 연구하고 사랑해 온 것을 설명할 때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하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무언가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의 모습은 아름답구나.’

자기가 사랑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는 일 자체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들의 눈을 보는 것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낮에는 각자의 일을 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저녁 7시부터 밤 10시까지 앉아 있으면서도 눈을 반짝이며 수업을 듣는 동기 선생님들을 보는 것도 좋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생각했습니다.

‘내가 지금 이 자리에 같이 있어서 참 행복하다.’


물론 네 달 동안 정말 많은 것을 배웠지만, 이제 와 생각하면 저는 여전히 숲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수억 년이라는 시간을 지나 만들어진 지구의 생태계를 몇 달의 교육으로 모두 이해할 수 있을 리 없습니다. 수많은 식물과 동물, 곤충과 균류, 흙과 물, 기후와 인간이 얽혀 있는 세계를 제가 몇 달 공부했다고 ‘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수료는 공부의 끝이라기보다 이제야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지 알게 된 시작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분명하게 달라진 것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불광천을 걸으면 나무와 풀과 천변이 그저 하나의 풍경처럼 보였습니다. 지금은 걷다가 가끔 멈춥니다.

‘이건 수업에서 배웠던 건데.’

그리고 옆에 있는 사람에게 한마디를 툭 던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비가 오면 길 위에서 만나는 지렁이가 왜 그곳에 나왔는지 생각하게 되고, 다시 흙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헤매는 지렁이를 보면 전과는 조금 다른 마음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우리가 꽃 한 송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수많은 작은 꽃이 모여 만들어진 꽃차례일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길가의 이름 모를 풀도 이제는 정말 ‘이름 모를 풀’이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이름이 있다는 사실조차 생각하지 않았던 존재였으니까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가장 큰 변화 가운데 하나는 비둘기였습니다. 여전히 비둘기를 아주 좋아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단계까지는 아닙니다. 하지만 적어도 가까이 왔다고 기겁하며 소리를 지르고 박수를 쳐서 쫓아내지는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숲에 들어가 새를 관찰해 보니 오히려 새들은 아주 먼 거리에서도 사람을 먼저 알아채고 달아났습니다.

그 모습을 보다가 문득 생각했습니다.

‘저 새들의 공간에 먼저 들어간 것은 나인데.’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의 공간에 성큼 들어가 놓고, 도시에서는 새가 내 가까이에 왔다고 ‘왜 이렇게 가까이 와, 불편하게’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누가 누구에게 가까이 온 것인지, 누구의 공간에 누가 들어온 것인지 관점을 조금만 바꾸어 보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숲해설가 교육을 받으며 제가 얻은 가장 큰 것은 어쩌면 이런 작은 관점의 변화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무 이름을 하나 더 아는 것, 새 이름을 하나 더 아는 것, 곤충 이름을 하나 더 외우는 것도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저것도 살아 있는 것이구나.’

‘저것에게도 저것의 방식이 있구나.’

‘내가 보지 않았다고 해서 없었던 것은 아니구나.’

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된 것.

저에게는 그것이 꽤 큰 변화였습니다.

처음에는 사람이 싫어서 숲으로 가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네 달 동안 숲을 배우고 나니 결국 다시 사람에게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숲해설가는 사람을 피해 숲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아니라, 숲에서 발견한 것을 다시 사람에게 가지고 오는 사람이었습니다. 자연과 사람 사이에서 양쪽의 이야기를 이어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아직 제가 언제 실제 숲해설가로 첫 해설을 하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당장 능숙한 해설가가 될 자신도 없습니다. 배워야 할 것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았으니까요.

그래도 조급하지는 않습니다.

수료 후에도 협회 안에서 여러 동아리와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선배님들과 동기 선생님들을 만나고, 함께 식물을 보고 새를 보고 숲을 걸으며 계속 공부하려고 합니다. 국립수목원도 한여름의 한 장면으로 끝내지 않고 다른 계절에 다시 찾아가 보고 싶습니다. 언젠가는 제가 직접 만든 숲해설 프로그램으로 누군가와 함께 숲을 걷는 날도 오겠지요.


2026년 5월 12일 처음 만났던 사람들이 9월 9일 수료식에서 다시 한자리에 모이기까지 약 네 달.

처음에는 두꺼운 교재를 보고 걱정했고, 첫 수업을 듣고는 쉬는 시간에 환불 규정을 찾아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제가 결국 수료했습니다.

그것도 총무까지 하면서요.

참 긴 후기입니다. 그만큼 재미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길게 적었는데도 제가 네 달 동안 보고 듣고 느낀 것의 반의반의반도 다 이야기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숲해설가 교육과정이 궁금해서 이 글을 찾아오신 분께 제가 드릴 수 있는 이야기는 결국 이것인 것 같습니다.

제가 설명하지 못한 나머지는 직접 숲에 들어가 만나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저에게는 사람이 싫어서 찾아간 숲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숲에서 사람을 다시 배웠고, 자연을 다시 보게 되었고, 제가 앞으로 무엇을 더 공부해야 하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그냥 지나쳤던 나무 앞에서 멈추게 되었고,

그저 ‘풀’이라고 불렀던 것들의 이름이 궁금해졌고,

‘벌레’라고 뭉뚱그렸던 작은 생명을 들여다보게 되었고,

쫓아내기 바빴던 새의 입장에서 한 번쯤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숲을 다 배운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숲을 배우고 나니 제가 얼마나 모르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시작입니다.

이상, 57기 최예윤(모로)의 숲해설가 양성과정 후기였습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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